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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봄 꽃, 그리고 가을 단풍

by 마빡목사 2023.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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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꽃, 그리고 가을 단풍

 

  시월 말, 단풍은 황홀했다. 차가운 가을바람은 마른 나뭇가지에 애처롭게 매달린 단풍을 흩날린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 숲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잎사귀가 부딪혀 쏴하고 파도소리를 낸다. 나뭇가지를 떠난 단풍잎은 살랑살랑 떨어져 이내 오솔길을 붉게, 노랗게 물들인다. 단풍이 깔린 호젓한 길에서 한 걸음을 뗄 때마다 길바닥에 웅크려 있던 마른 단풍이 온몸을 부수며 소리 내어 자기 존재를 알린다.

 

'날 잊지 말아요.'

 

  봄이 오면, 그래서 벚꽃 잎 날릴 때가 되면 어김없이 그리운 아이들이 찾아온다. 구해주지 못했던, 지켜주지 못했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염없는 기도뿐이었던, 그때 그 봄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매년 벚꽃을 흩날리는 봄바람이 되어 우리 곁을 찾아오는 걸까. 하늘하늘 흩날리는 벚꽃 잎이 너희들인지, 따뜻하게 감싸는 바람이 너희들인지. 봄이 되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단원고 아이들 같다.

 

  부끄럽게도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 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와 가깝지 않으면 그저 한 사건을 대하는 관망자에 불과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은 첫째 아이가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시기였다. 아이가 아장아장 다가와 내 품에 안겨 나를 의지할 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그런데 문득, '이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이라는 막연한 공포가 엄습했다. 그제야 세월호를 바라보며 구조를 기다리는 부모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앉으나 서나 기도했다. 기도하면서도 내 아이가 미소 짓는 모습이 떠오르면 울컥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살려달라고. 구조할 인력과 장비를 투입했다는데 도대체 왜 한 명도 구조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가 없는지. 가슴을 치며 소리 내 기도했다. 그때 나는 심각하게 신이 존재하는지 의구심을 가졌다. 전지전능한 신이, 선한 신이 살아있다면 저 죽어가는 어린 학생을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겠냐고.

 

  그러나 간절히 기도하며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단 한 생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구조 활동에 나선 잠수사가 물 밖으로 건져낸 아이들은 이미 온기와 생명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살아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던 아이들은 이미 부모의 손이 닿을 수 없는 하늘나라로 떠난 뒤였다. 자기 목숨을 대신 주고서라도 되살리고 싶었으리라. 부모가 당한 슬픈 아픔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으랴.

 

  나는 기도하며 간절히 매달렸던 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어디 계시냐고 화를 냈다. 붉은빛을 띤 십자가를 향해 고개를 뻣뻣이 세워 따져 물었다. 붉은 십자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울고 있는 신을 보았다. 하나뿐인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며 울 수밖에 없던 신. 내가 바랐던 전지전능한 신은 저 하늘 보좌에 앉아 관망자처럼 참사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 사이에서 같이 울고 있었다. 신은 나보다 훨씬 앞서 유가족 사이에서 함께 고통 속에서 울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인재였다. 무능력한 정부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더군다나 유가족은 내 아이가 왜 죽게 되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자녀를 떠나보내야 했던 억울함이 그대로 남아있는데도. 정부는 원인을 규명하기보다 진실을 덮는데 안간힘을 썼다. 오히려 유가족을 폄훼하고, 참사를 어쩔 수 없이 우연히 벌어진 사고로 둔갑시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우려 했다. 그때, 유가족이 세상을 향해 간곡히 부탁했다.

 

… 잊지 않겠다 약속해 주세요…

 

  그때 나는 유가족과 언약을 맺었다. 평생토록 세월호 아이들을 잊지 않겠다고. 내 아이가 자라는 걸 볼 때마다 세월호 아이들도 함께 자란다 생각하겠다고. 무조건 유가족 편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봄은 따뜻했지만 가을은 잔인했다. 또다시 인재로 인한 참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세월호 참사와 어찌 그리 닮았는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당한 슬픈 아픔을 10.29 참사 유가족이 똑같이 당하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유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져 위로하기보다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하다.

 

  이태원역 앞에 시민들이 직접 만든 10.29 참사 추모공간이 있었다. 어느 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자 이태원역을 지나는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투명 비닐을 구해 국화꽃과 시민들이 쓴 손 편지를 덮었다. 자녀를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을 유가족이 이태원역 추모공간에 왔을 때, 시민들이 이렇게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단 걸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정부는 애도 기간을 정해 추모 분위기를 일단락하려 했다. 또, 위패와 영정사진도 없는 분향소를 차려 놓고 일주일 만에 철거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희생자를 잊지 않으려 했다. 특히, 이태원역 추모공간은 유가족을 위해 시민이 지켜 섰다.

 

  세월호 참사 때 기억하겠다고 유가족과 언약을 맺은 시민들은 오늘날 10.29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이 부탁하지 않아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봄꽃이 흩날리면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고, 가을 단풍이 흩날리면 10.29 참사로 희생당한 꽃다운 청춘을 기억하겠다고.

 

  “우리는 잊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잊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함께 기억할게요. 가을 단풍이 바람에 흩날리면 당신의 아들, 딸을 함께 맞이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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