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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27

감옥 감옥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이, 컴퓨터 화면 늪에 빠져든다.유튜브라는 게 참 괴기하다.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정신을 쏙 빼먹는 요물. 학교 입시 홍보 영상을 만들려고 유튜브에 접속했다. 참고할 만한 영상을 찾아서 이것저것 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홍수에 둥둥 떠다니는 생수통 같은 나를 발견했다. 뭐 하는 짓이냐, 스스로에게 묻고 있으면서도 손은 마우스를 채찍질한다. 정신이 나간 몸, 좀비처럼 의식 없이 영상을 보고 있다.스트레스와 불안이 쌓이면 유튜브는 사람을 좀비로 만든다. 물려서 전염되는 게 아니라 유튜브가 좀비 바이러스를 전염시킨다. 학교 입시와 관련해서 온라인 홍보를 맡았다. 홍보 영상을 만드는 일을 혼자 하려다 보니 스트레스가 어느새 키보다 높이 쌓였다. 혼자서 끙끙 앓다가 좀비 바이러스.. 2024. 7. 23.
인생 수업 인생 수업 첫째 아들 하늘이와 셋째 딸 리라의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다. 어젯밤 정적을 깨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처럼 잠자리에 들던 막내딸이 콧소리 섞어 귓가를 간지럽히던 말이 생각난다. “아빠, 리라는 발표하는 게 부끄러워. 부끄러워서 말 못 하면 어떻게 해? 발표하기 싫어.” 순간, 어린 딸이 처한 상황과 전혀 관계없는 군대 시절 짧은 이야기가 스치듯 떠올랐다. 신병교육대 교관으로 첫 발령을 받고, 대대장 앞에서 시범강의를 앞둔 때였다. 긴장해서 얼굴까지 창백해진 걸 보고 중대장이 조언했다. “야, 2 소대장 떨지 마! 그냥 네 앞에 유치원생이 앉아있다고 생각해! 유치원생을 가르치듯이 하란 말이야!” 전혀 안정이 안 됐다. 대대장을 유치원생 취급하라니. 하지만 그 말이 머릿속에 박혀서 그런지 어느새 딸에게.. 2024. 6. 27.
개나리꽃 필 무렵 개나리꽃 필 무렵 따스한 봄바람이 부드럽게 뺨을 스친다. 훈훈하게 부는 바람은 이내 개나리꽃을 잠에서 깨운다. 개나리는 뒤척이며 눈 비비듯 꽃 머리를 든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개나리꽃 잎 사이로 봄바람이 내게 속삭인다. 어김없이 내가 왔어요. 약속했지요? 기억하기로.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일 년 내내 철조망 사이에 잇대어 피어있는 노란 리본 꽃이 떠오른다. 꽃잎에는 그날에 한 약속이 까만 글씨로 새겨져 있다. 노란 꽃잎 위에 위태롭게 선 약속들은 1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몸살을 앓는다, 목포신항에 핀 노란 리본 위에서. 첫째 아들 하늘이가 태어난 지 십 개월이 지난 때였다. 아빠라는 말도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하던 때. 눈에서 멀어지면 눈 앞에 하늘이가 아른거리고, 보고있어도 보고 싶은 .. 2024. 4. 19.
청록빛 의자 청록빛 의자 엄마가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매일 엄마의 빈 자리를 보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목양실. 목양실은 목사가 설교를 준비하고, 교인과 상담하는 공간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책상 맞은편, 그리고 어머니가 즐겨 앉는 소파 맞은편에 장독대만 한 청록빛깔 헝겊 의자가 우두커니 서 있다. 어머니는 날마다 의자를 스치고 바라본다, 외할머니가 앉으셨던 조그만 의자를. 나 역시, 매주 어머니의 목양실에 들어설 때마다 청록빛 의자와 마주한다. 의자를 볼 때마다 떠오른다, 우리 외할머니. 어머니는 교회 전도사로 일하느라 할머니에게 어린 나를 맡기는 일이 잦았다. ‘외할머니’ 하면 맨 먼저 백김치가 떠 오른다. 뻘건 배추김치 못 먹는 손주를 위해 입으로 쭉 빨아 만들어 주시..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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