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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감옥

by 마빡목사 2024.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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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이, 컴퓨터 화면 늪에 빠져든다.

유튜브라는 게 참 괴기하다.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정신을 쏙 빼먹는 요물. 학교 입시 홍보 영상을 만들려고 유튜브에 접속했다. 참고할 만한 영상을 찾아서 이것저것 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홍수에 둥둥 떠다니는 생수통 같은 나를 발견했다. 뭐 하는 짓이냐, 스스로에게 묻고 있으면서도 손은 마우스를 채찍질한다. 정신이 나간 몸, 좀비처럼 의식 없이 영상을 보고 있다.

스트레스와 불안이 쌓이면 유튜브는 사람을 좀비로 만든다. 물려서 전염되는 게 아니라 유튜브가 좀비 바이러스를 전염시킨다. 학교 입시와 관련해서 온라인 홍보를 맡았다. 홍보 영상을 만드는 일을 혼자 하려다 보니 스트레스가 어느새 키보다 높이 쌓였다. 혼자서 끙끙 앓다가 좀비 바이러스가 스멀스멀 몸에 기어오르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빨리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때린다. 그래, 도망치자. 곧장 컴퓨터를 끄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한 시 사십오 분. 점심도 거른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배에서 밥을 넣어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이제야 들은 것. 아무 생각 없이 나온 터라 가장 무난한 메뉴, 자주 가던 순대국밥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빗속을 뚫고 운전하는데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왔다는 죄책감이 추격하듯 쫓아왔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에 멸망할 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여인처럼 되지 않으리라. 앞만 보고 달렸다.

순대국밥집에 거의 도착할 때쯤 어둑어둑한 식당 실내조명이 불안을 더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면 참 좋았을 텐데. ‘정기 휴무’란 팻말이 멋쩍은 미소를 보낸다. 머리가 하얗다. 왜 하필 오늘이냐며 혼자서 구시렁댄다. 카멜레온처럼 눈을 빙빙 돌려 빈속을 채울 식당을 찾는다. 혼자 밥을 먹을 곳이 없다. 정처 없이 도로를 따라 헤매다 샌드위치 패스트푸드점을 보고 잽싸게 들어갔다. 평소에 혼자서 밥을 잘 먹는다고 자부했는데,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홀로 창가에 앉아 샐러드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니 추격하던 죄책감과 뱃속에 허기가 사라졌다. 대신 빠삐용이 머릿속에서 주인 노릇을 한다. ‘식후엔 커피지, 카페로 가자!’라고 두 손 들고 외친다. 커피 맛이 연인과 나눈 첫 키스 같았다는 카페를 향해 갔다. 첫 키스를 나눈 추억을 회상하고 싶은 욕망이었을까.

하지만 그날따라 첫 키스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았나 보다. 카페 주차장이 차로 가득 찼다. 첫 키스를 떠올리는 욕망이 불륜처럼 느껴졌다. 운전대를 휙 돌렸다. 커피 맛은 포기다. 커피 말고 분위기를 찾아가야겠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으로. 아중호수가 띄우는 잔잔한 물결이 불안을 달래주길 바라며 호숫가 카페를 향해 차를 몰았다.

혼자 책을 읽고 싶을 때마다 찾는 카페에 도착했다. 장마철이라 에어컨 바람이 서늘하게 몸을 감싼다. 항상 앉는 창가 자리에 앉으려 했는데, 바로 옆자리에 창가를 바라보며 연리목처럼 엮여있는 연인이 있다. 질투심이 뿔처럼 뭉글뭉글 올라왔다. 하지만 문득 카페 앞에서 첫 키스의 낭만이 불륜처럼 변한 마음이 떠올랐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익숙한 자리를 포기하고 이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네 명이 앉는 테이블이라 눈치가 보였다. 앉을까 말까 망설이는 나에게 ‘여기가 네 자리야’라고 빠삐용이 또 소리친다.

카푸치노와 얼그레이 케이크, 그리고 책이 놓인 원목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창밖을 둘러본다. 고소한 커피 향과 우유 거품 위에 올라간 계피 향이 뒤섞여 자유의 향기를 풍긴다. 밖에는 장맛비가 요란하게 내리는데, 아중호수는 잔잔히 넓은 가슴으로 비를 품는다. 부처님 미소 같은 아중호수를 둘러싼 기린봉은 두 팔로 호수를 껴안는다. 기린봉 품 안에서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오! 자유. 아중호수와 기린봉 틈바구니에서 늘 가방에 넣고 다니던 책을 펴 읽기 시작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글쓴이와 맞장구를 쳐가며 책 속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운 시간이었다. 어느새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됐다고 생각한 순간, 손전화를 차에 두고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자유를 갉아먹는 범인이 드러나는 순간! 또다시 불안이 엄습했다. 오늘 못 한 일 어떡하지. 얼굴이 찌그러진 깡통이 된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빠삐용이 날카롭게 비명을 지른다.

차로 돌아가는 길은 물먹은 솜이불을 덮은 듯 무거웠다. 감옥으로 돌아가는 기분.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에서 탈출하고 싶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자마자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툭툭 건드린다. 스마트폰 화면도 내 머리를 툭툭 친다. ‘어차피 넌 내 손아귀에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매일 화면에 갇혀 사는 삶. 보이지 않는 쇠창살을 뚫고 싶어 열심히 수저로 땅을 파 보아도 다시 화면 쇠창살에 갇히고 마는 현대인의 삶. 어떻게 해야 스크린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까.

스크린 감옥에서 잠깐 벗어나는 시간이 일탈이 되는 세상, 빠삐용에게 탈출방법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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