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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죽음으로 억울함을 증명하는 세상

by 마빡목사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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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억울함을 증명하는 세상

뭔가 잘못됐다. 살고 싶으면 죽어야 하다니.

 “억울해 죽겠다.”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정말 죽을 만큼 억울하든지 아니면 ‘죽음’이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자기 과오를 덮으려는 의도이든지. 억울해 죽겠다는 말은 수만 번 해도 억울함을 증명하지 못한다. 죽음으로 증명하지 않는 한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억울하단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등지면 그보다 더한 억울함은 없다. 동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삶’이라는 가장 큰 유익을 포기하는 것으로 자기 억울함을 증명한다.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자신이 억울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존재가 사람이다. 

 국가의 수사권력은 범죄를 예방하고 진압한다. 수가권력이 가진 권한은 인권을 보호하려고 우리가 위임한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려고 권력을 써야만 우리에게 박수를 받는다. 그런데 만일, 수사권력이 국민 가운데 누군가를 피의자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피의자의 인간으로서 존엄을 잔혹하게 해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누군가의 존엄을 마음껏 짓밟을 권한을 수사권력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 죽음으로 자기 억울함을 증명한다면 수사권력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억울한 사람이 없으라고 위임한 수사권력인데, 억울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수사권력은 어떤 책임을 지는가. 

 언론은 권력 감시와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한다. 권력으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언론은 해야 한다. 특히, 수사 권력은 막강하다. 죄 없는 사람도 그 앞에 서면 움츠러든다. 언론은 수사과정에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무죄 추정의 원칙 같은 수사원칙을 지키는지, 수사는 공정하게 하는지 감시해야 한다. 유명인이라고 해서 혐의 단계에 있는 수사내용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대중에게 알린다면, 권력 감시가 아니라 한 시민을 향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유명인은 이미지가 곧 삶이다. 언론이 의혹 단계에 있는 혐의를 공표하여 평생토록 애써 쌓아 온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졌다. 삶의 터전을 폐허로 만든 것도 모자랐나 보다. 언론이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과연 누가 버텨낼 수 있을까.

이선균씨, 나의 아저씨.. 멋진 배우였습니다, 나에게.

 2023년 12월 27일 오전, 배우 이선균(48)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어떤 혐의를 받았든, 그는 죽음으로 자기 억울함을 증명했다. 혐의가 사실이든 아니든 더 이상 진상을 물을 수 없다. 더 묻는 것도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자기 생명보다 귀한 게 없는데, 그가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선균 배우는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배우이다. 그가 주연 배우로 출연한 '나의 아저씨'는 내 인생 드라마 중 하나이다. 드라마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묵직하게 자기 삶을 꿋꿋이 사는 중년 아저씨를 연기했다. 이선균 배우는 오늘도 나에게 '나의 아저씨'이다. 오늘 그가 세상을 떠났다. 

 수사 기관은 명확한 물증을 통해 혐의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일부 진술에 의존하여 피의자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수사하면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수사기관은 그렇게 이선균 배우를 압박했다. 증거채취를 명목으로 세 번이나 공개 소환하여 기자들 앞에 세웠다. 세 번 모두 혐의 입증 실패. 거기에다 언론은 단독이라며 매번 집중 보도하고, KBS는 사건과 관련이 없는 이선균 씨의 사생활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하루에 수십 수백 번씩 보도하면 언론을 살짝 훑어보는 사람들은 그를 범죄자로 낙인찍을 수밖에. 

 배우 이선균 씨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사회적 타살이다. 그의 죽음에 대해 수사기관과 언론은 책임지지 않는다. 사람은 죽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 이선균 배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적 힘과 사회적 사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물어야 한다. 유명 배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을 넘어 수사 기관은 과연 최소한의 인권보호를 위한 조치를 강구했는지, 언론은 권력 감시를 한 것인지 아니면 한 사람의 인격을 말살한 것인지. 그럴 리 없겠지만, 일어나도 안될 일이지만, 혹시라도 나나 내 주위 누군가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식 없이 한 배우의 죽음을 소비해 버리면, 우리 사회는 죽음으로 억울함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이 되고 만다.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색 바랜 나뭇잎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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