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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1

청록빛 의자 청록빛 의자 엄마가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매일 엄마의 빈 자리를 보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목양실. 목양실은 목사가 설교를 준비하고, 교인과 상담하는 공간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책상 맞은편, 그리고 어머니가 즐겨 앉는 소파 맞은편에 장독대만 한 청록빛깔 헝겊 의자가 우두커니 서 있다. 어머니는 날마다 의자를 스치고 바라본다, 외할머니가 앉으셨던 조그만 의자를. 나 역시, 매주 어머니의 목양실에 들어설 때마다 청록빛 의자와 마주한다. 의자를 볼 때마다 떠오른다, 우리 외할머니. 어머니는 교회 전도사로 일하느라 할머니에게 어린 나를 맡기는 일이 잦았다. ‘외할머니’ 하면 맨 먼저 백김치가 떠 오른다. 뻘건 배추김치 못 먹는 손주를 위해 입으로 쭉 빨아 만들어 주시.. 2024. 3. 29.
파랑새 파랑새 차창 밖 빗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창밖을 향해 몸을 돌린 채, 비스듬히 누워 잠을 청하던 스무 살 청년의 어깨가 이내 바르르 떨린다. 굵은 빗줄기 사이로 달리는 고속버스 엔진소리가 흐느끼는 청년을 덮는다. 빗물이 차창에 방울로 맺혀 알 수 없는 곳으로 주르륵 흘러 흩어지듯이, 청년의 첫사랑은 차창 밖 빗방울처럼 떠났다. 늘 외로움에 쫓기듯 살았다. 외동아들로 태어나 혼자 자랐다. 어머니는 교회 전도사로 아버지는 유조선 기관사로. 세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보다 혼자이거나 둘이었던 시간이 훨씬 많았다. 엄마와 아빠로 채우지 못한 빈 마음에 외로움은 똬리를 틀었다. 거부할 수 없는 불편한 손님이었다. 불청객을 쫓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으로 텅 빈 곳을 채우는 것이었다. 아직 여물지.. 2024. 1. 16.
'이번 역은 문학녘' 이번 역은 문학녘 어두문학회 한일장신대학교 문학동아리 어두문학회에서 수필집을 출간했다. 『이번 역은 문학녘』이다. 머리 글 '문학한다는 것'에서 최재선 작가는 "문학한다는 것을 잠시도 망각하지 말고, 삶을 문학적으로 승화하며 작가의 길을 묵묵히 보행했으면 한다."라는 말로 수필 작품집을 내는 제자들에게 '문학에 임하는 작가의 삶'을 당부한다. 최재선 작가는 제자들에게 늘 '삶으로 쓰는 글'을 강조한다. 삶을 사람답게 살아야 수필을 쓸 수 있다. 세상과 사람을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는 삶이 곧 사람답게 사는 삶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작가의 삶을 솔선수범하려고 매일 걷고 매일 글을 쓴다. 『이번 역은 문학녘』에 열두 작가의 작품이 실렸다. 열 명의 작가는 어두문학회에서 '삶으로 쓴 글'을 나누며 성장한 수.. 2023. 12. 13.
교대근무 교대근무 아버지는 예수님 말씀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아버지는 저녁 아홉 시가 되면 거실에 하나밖에 없는 TV 앞 소파에 앉으셨다. 분명 세상 소식에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앉으셨는데,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소파에 푹 퍼지시더니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코를 드르렁 고신다. 늘 불만이었다. 다른 채널에서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예능이 한창 방영할 때인데 TV를 독차지하고선 주무시다니. ‘드르렁드르렁 퓨~’ 코를 고실 때면 이때다 싶어서 채널을 돌린다. 기척 없이 채널을 돌려도 아버지는 놀랍게 깨신다. 꿈속에서 도대체 뭘 드셨는지 쩝쩝 입맛을 다시며 말씀하신다. “야~ 뉴스 보고 있잖아.” 아니, 분명 방금 전까지 코 골며 주무시던 분인데. 뉴스를 보고 계신단다. 꿈과 현실에 경계가 없는 진정한 초인이시다..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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