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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1

존버 존버 감정의 늪에 빠졌다. 밀려 들어오는 외부 감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무엇인가 감정을 톡 건드리면 봇물터지듯 화로 가득찬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화가 담긴 말과 글은 듣는 이나 읽는 이에게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다. 차라리 입을 닫자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사람 만나는 게 꺼려지고, 말수도 줄고, 글쓰기도 그친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속에서 엉켜 썩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어둡고 축축한 터널 속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더듬어 본다. 여전히 출구는 찾지 못한채 시간은 눈치없이 등을 떠민다. 앞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 보지만 다람쥐 챗바퀴 돌듯 제자리를 걷는 기분이다. 좌우를 둘러봐도, 손을 이리저리 휘저어봐도 출구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2023. 9. 22.
깊은 밤 노래 깊은 밤 노래 밤이 깊었는데, 풀벌레는 지치는 법이 없다. 아파트 창문 거의 눈 감았는데도 풀벌레가 부르는 사랑노래는 쉼표 없이 무한 반복이다. 누굴 찾는 게냐. 사랑하는 연인을 찾는 건지, 자기네들끼리 명창을 뽑겠다고 노래자랑을 하는 건지 미련한 자로서 알 길이 없다. 네가 사랑을 아냐. 풀벌레 사랑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무심한 자는 눈을 감고 가만히 풀벌레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찌르르 찌르르. 쭈륵쭈륵쭈륵. 이르리 이르리. 가만 듣고 보니 그리움에 사무친 슬픈 가사가 가슴에 구멍을 판다. 그래. 이 밤이 지나기 전 그리운 님을 만나야 할 텐데. 곧 사랑에 메마른 겨울이 오기 전에 말이야. 밤이면 밤마다 노래하는 풀벌레처럼 누군가를 위해 기약 없는 열심을 내본 적 있던가. 끝끝내 그리운 님을 만나.. 2023. 9. 19.
잠시만 안녕, 봄 그토록 기다렸던 봄인데, 헤어져야 할 때가 다가온다. 따스했던 햇볕이 어느새 따갑다. 봄볕은 겨우내 추운 바람에 움츠렸던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었고, 지친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이제는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처럼 봄은 뒷모습을 보인 채 멀어져 간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 가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했던가. 떠나는 봄을 붙잡지 못해 미련이 가슴에 사무친다. 그리움을 달래려고 봄과 사랑을 나눴던 창이 넓은 카페를 찾았다. 창밖에는 여전히 지난 연인의 자태가 짙게 물들어 있다. 고운 바람이 불면, 눈 앞에 펼쳐진 수많은 푸른 나무가 호흡을 맞춘 듯이 살랑살랑 나뭇가지를 흔든다. 부드러운 몸짓으로 춤사위를 뽐내는 푸른빛에 빠져들어 찰나에 황홀함을 느낀다. 가질 수 없는 황홀은 푸른 하늘과 호.. 2023.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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