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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존버

by 마빡목사 2023.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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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

 감정의 늪에 빠졌다. 밀려 들어오는 외부 감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무엇인가 감정을 톡 건드리면 봇물터지듯 화로 가득찬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화가 담긴 말과 글은 듣는 이나 읽는 이에게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다. 차라리 입을 닫자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사람 만나는 게 꺼려지고, 말수도 줄고, 글쓰기도 그친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속에서 엉켜 썩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어둡고 축축한 터널 속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더듬어 본다. 여전히 출구는 찾지 못한채 시간은 눈치없이 등을 떠민다. 앞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 보지만 다람쥐 챗바퀴 돌듯 제자리를 걷는 기분이다. 좌우를 둘러봐도, 손을 이리저리 휘저어봐도 출구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희망을.

 비굴하지 않게 살고 싶은 '을'에게 글쓰기가 유일한 해방구이다. 조용한 방구석, 달덩이 같은 노오란 전구 아래에서 홀로 글을 쓴다. 내면에 잔뜩 쌓인 케케묵은 감정이 말을 건다.

_그러게 좀 적당히 넘어가고 그래야지. 뭐 잘났다고 나서, 나서길. '을'이란 원래 그런 법이야. 적당히 숙일 줄 알아야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거야. 뭘 바꿀 수 있는 힘도 없으면서. 그냥 조용히 자기 개발이나 하면서 살아!

 감정에게 대꾸한다.

 "똥냄새 나는 소리하고 있네. 넌 거름일 뿐이야. 지금 당장 네 냄새때문에 괴롭지만 넌 날 더 자라게 해줄 퇴비야. 난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아. 난 지금 보다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살아. 먹고 사는 건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폭력적인 '갑' 앞에서 '을'은 비굴하기 쉽상이다. '갑'은 자본이 가진 힘과 압도적인 권력으로 언제든지 을을 짓누를 수 있으니까. 고상한 말투로 법령이나 규제를 들먹이며 독립적 주체로서 '을'의 자유를 우아하게 짓밟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고 돈만 밝히는 갑’은 ‘자기에게 충성하는 을’을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자기가 갑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물화 되어버렸다는 걸 느낀 을은 실존으로서 모멸과 수치를 느낀다. 그때, 비굴함이 을에게 운명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을은 운명을 거스르기로 결심한다. 수단이 되지 않을테다. 하늘이 부여한 인간 존엄을 당신이 자랑하는 돈과 권력의 힘에 결코 꺾이지 않을테다.

 어두컴컴한 긴 터널 속에서, 이제까지 출구를 찾으려 벽을 짚었다. 지금부터는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비굴한 운명에 저항하는 을'을 향해 손을 내민다.

 "우리 손 잡고 함께 존엄을 잃지 말고 버텨 냅시다."

을들의 저항
이미지 출처: Midjourney에서 키워드(solidarity, Withstand, people, bright mood)로 AI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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