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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억수

by 마빡목사 202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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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운다.

  흐느끼다가도 통곡한다. 가슴 치다 애간장 녹듯 오랜 시간 쌓아둔 산 절벽 바위와 흙이 여지없이 무너져내린다. 무엇이 하늘을 이토록 슬프게 하는 걸까. 올해는 유독 깊은 한이 서린 것처럼 하늘이 슬프게 우는 날이 길다.

  나태의 늪에서 헤어 나오려고 집을 나섰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도 차를 몰아 사색에 잠길 공간을 향했다. 그런데, 이내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실핏줄 같던 동네 실개천이 누런 급류를 일으키는 거친 강물로 불어난 걸 보고,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거센 물살이 금방이라도 다리를 집어삼킬 듯 했다.

전주천 범람 직전 사진

  지난 토요일, 간만에 하늘이 울음을 그쳤다. 다섯 식구를 데리고 처가에 가려고 자동차 전용도로를 향해 갔다. 그런데, 나들목 차선에서 진입하는 차와 역주행하는 차가 서로 얽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도로를 통제하는 사람이 없어 일대가 난장판이었다. 큰 사고가 났나 보다며 반대편 차선으로 차를 돌려 다시 자동차 전용도로에 올랐다. 진입로를 빠져나오는데, 한 아주머니가 예언자처럼 2차선을 혈혈단신으로 막아 섰다. 앞선 차에게 손사래를 치며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경찰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막힌 길을 뚫고 돌아와 겨우 전용도로에 올랐는데, 경찰도 아닌 사람이 길을 막으니 삿대질하며 따져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말 몇마디 주고 받더니 곧 차를 돌려 돌아나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 차례가 되자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었다.

  “저 앞에 산사태가 났어요. 돌아가셔야 해요.”

집 앞 자동차 전용도로 산사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던 화가 물웅덩이 마르듯 사라졌다. 아주머니는 경찰이 할 일인데도 자기 일처럼 위험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었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우리 차는 역주행 차가 되어 구경만하던 난장 한 복판에서 한참을 빠져나와야 했다.

  난장판 속에서 다친 사람은 없나 걱정이 됐다. 며칠 전 뉴스에서 한 택시 기사와 승객이 산언덕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흙과 바위를 헤쳐나와 목숨을 겨우 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 근처 산사태 소식이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일이 있은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간다. 길은 여전히 막혀 있다. 

  작년 이맘때쯤 서울 강남역 일대가 빗물에 잠겼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고급 아파트 주민은 빗물에 젖은 신발에 투덜댔지만, 반지하에 사는 사람은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반지하 주택은 침수가 시작되면, 현관문에 빗물이 쏟아져 내려와 집 안에 있는 사람은 문을 밀고 나올 수 없다. 반지하 방 작은 창이 유일한 탈출구이다. 이웃 주민이 나서서 쇠창살을 걷어내고, 창을 부셔서 구조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 잠을 자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물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어느 가족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

강남역 반지하 침수 인명사고
갑작스런 침수로 미처 빠져나오진 못한 일가족 3명이 돌아가셨다.

  강이 범람하거나 산사태가 나는 건 자연재해라 빈부가 없다. 자연재해는 몇 사람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자연재해를 대비하는 사회구조적인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이다. 시민이 투표로 세운 정부와 지자체는 예상되는 재난 위험을 대비하고, 위기 상황이 왔을 때 경고하고, 피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구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역할에 충실하면 인재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작년 강남역 침수나 포항 모 아파트 지하 주차장 사고와 같이 사람이 사는 주거지역에서 목숨을 잃는 건 명백한 인재다. 반복해선 안 되는 참사다. 작년 인명 사고를 경험한 정부는 특별한 대비책을 발표했다.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올해는 수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벌써 사십 명을 넘었다. 기록적 폭우는 시골 농촌에 사는 농민, 저지대에서 살거나 장사하는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빈부를 뚜렷이 구분하는 수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과 실제 침수 피해 사진
영화 기생충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왼쪽은 기생충 영화 한 컷이고, 오른쪽은 실제 침수피해 사진이다.

  햇빛과 비는 땅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두루 미치는 축복이다. 신은 사람에게 빛과 물을 다스리는 지혜를 주었다. 지혜로운 사람은 빛과 물로 다같이 잘사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차별하지 않고 내리는 빛과 물을 공명정대하게 배분하는 일이 정치다. 정치는 햇빛을 고루 나누고, 물길을 내거나 제방을 쌓는 일을 한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을 살리는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재산에 따라 일조량은 달라진다. 많이 가진 사람은 햇볕마저 독점한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은 반쪽짜리 창으로 겨우 들어올까 말까 하는 빛 줄기를 간신히 붙잡고 산다. 그마저도 빌딩 숲 그늘에 막힌다.

  비가 억수로 내려 침수가 시작되면, 고층 빌딩에 사는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물이 찼느니 집값 내려가느니 하소연한다. 반지하 방에 사는 사람은 변기로 역류하는 하수를 견뎌야 하고, 살아남을 걸 걱정한다.

  하늘이 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늘은 우리에게 빛과 물을 다 함께 누리라고 내려주는데, 오늘 누군가는 그것을 독점하거나 낭비하고, 누군가는 그것으로 죽을 위기에 내몰린다. 비정한 세상을 보는 신의 눈에서 눈물이 억수로 흐른다. 가난한 이에게 빗물이 재앙이 되는 세상을 울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게다. 이 세상을 만들고 보살피는 신에게는.

  장마 중간에 가끔 하늘이 갤 때가 있다. 층층이 쌓인 구름 사이로 햇볕이 신의 손길처럼 내려올 때도 있다. 그땐 이 비정한 세상에서 신이 희망을 찾을 때다. 신과 함께, 신이 내린 생명의 복을 남용하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풍성하게 서로 나누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억수같이 흐르는 신의 눈물을 닦는 것이다.

  빗줄기가 잦아든다. 누군가 희망할 용기를 품었나 보다. 저 멀리 먹구름 사이로 작은 빛줄기가 어렴풋하다.

비 온 뒤 하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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