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또 하루
또 하루가 간다.
캄캄하고 고요한 방구석에서 노란 스탠드 불빛에 기대 키보드 자판을 두드린다. 시침과 분침이 '12'에서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눈 뒤 헤어진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잡고 싶어도 다시 잡을 수 없는 하루가.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 열한 살 큰 아들 하늘이, 아홉 살 둘째 아들 나라, 일곱 살 막내딸 리라, 나를 빼고 모두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항상 좋은 일만 있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었다. 하지만, 잠이 들기 전에는 늘 좋은 하루로 마무리가 된다. 사랑하는 아내와 하늘나라리라로 하루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서.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니고, 엄마아빠에게 딱 붙어있을 때, 손이 많이 필요했던 때는 '어서 컸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쳤던 때가 있었다. 아내는 더 힘들었을게다. 나야 직장일을 핑계로 바깥바람도 쐬고, 보람을 느낄만한 일을 하고 다니지만 아내는 집에서 온종일 아이와 씨름을 해야 했으니.
아내는 활발한 사람이다. 예술가 성향이 강하다. 자유분방하고 뭔가 만드는 걸 무척 좋아한다. 그런 사람이 아이 셋을 키우면서 집에만 있으려니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을까. 아내는 그런 마음을 속에서 삭히지 않고 노래로 다듬었다. 힘든 하루를 희망할 수 있는 용기로 승화하는 자신을 가사로 썼다. 그리고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나는 때때로 기적 같은 하루를 허투루 썼다고 느낄 때, 또는 괴로운 하루 끝에서 희망을 찾고 싶을 때 종종 듣는다. 아내가 부른 이 노래, '하루, 또 하루'를...
하루, 또 하루
작사/작곡/노래 김아롱
그저 그렇게 지나간 날들
어쩌면 많은 기대도 없이
많이 지쳐있지도 않게
그저 그렇게 흘러간 수많은 날들
다시 일어서기란
새로운 꿈을 꾸기란
너무 어려워 보여
나를 찾지 못한 채
알아보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나로 살아있게 만드는 게 무얼까
다시 나로 살아갈 수는 있는 걸까
나를 찾고 싶어
찾아내고 싶어
오늘도 걷고 또 살고
살아내는 하루, 하루
하루를 살아도 더 의미 있는 일
다시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일
지워져 가는 나의 꿈 나의 미래를
다시 희망으로 채워
넣을 수 있어
웃을 수 있어
할 수 있어
나로 살아있게 만드는 게 무얼까
다시 나로 살아갈 수는 있는 걸까
나를 찾고 있어
찾아낼 수 있어
오늘도 걷고 또 살고
살아내는 하루
내일도 걷고 또 살고
살아내는 하루, 하루
막내딸이 훌쩍 컸다. 시간은 오동통통하던 막내딸젖살을 쏙 빼먹었다.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허전하다. 지나간 앳된 모습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 휑하니. 지난날 막내딸이 짓는 사랑스러운 미소는 옛 사진을 봐야 또렷이 회상될 뿐. 깨물고 만질 수 있었던 사진 속 막내딸은 시간의 수평선을 넘어가버렸다. 날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막내딸은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구멍 뚫린 아빠 마음을 메꾼다.
자꾸만 아이들의 옛 모습이 그립다. 그래도 커야지. 무럭무럭 자라야지. 추억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욕심은 나를 어린아이로 만든다. 아이들 앞에선 항상 어른인 척 하지만, 나 역시도 인생은 처음 사는 어린아이인 걸.
시간은 순서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아이들의 시간과 내 시간은 함께 흐른다. 그러나 같은 시간, 아이는 아이의 세상을, 나는 나만의 세상을 산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꿈을 꾸는 것처럼 나 역시 하루하루 꿈을 꾸고, 희망할 용기를 품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어린아이처럼, 그래! 오늘도 내일도 힘내자. 하루, 또 하루를!
오늘 하루 마침표를 찍으러 아내와 아이들 미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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