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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27

파랑새 파랑새 차창 밖 빗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창밖을 향해 몸을 돌린 채, 비스듬히 누워 잠을 청하던 스무 살 청년의 어깨가 이내 바르르 떨린다. 굵은 빗줄기 사이로 달리는 고속버스 엔진소리가 흐느끼는 청년을 덮는다. 빗물이 차창에 방울로 맺혀 알 수 없는 곳으로 주르륵 흘러 흩어지듯이, 청년의 첫사랑은 차창 밖 빗방울처럼 떠났다. 늘 외로움에 쫓기듯 살았다. 외동아들로 태어나 혼자 자랐다. 어머니는 교회 전도사로 아버지는 유조선 기관사로. 세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보다 혼자이거나 둘이었던 시간이 훨씬 많았다. 엄마와 아빠로 채우지 못한 빈 마음에 외로움은 똬리를 틀었다. 거부할 수 없는 불편한 손님이었다. 불청객을 쫓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으로 텅 빈 곳을 채우는 것이었다. 아직 여물지.. 2024. 1. 16.
죽음으로 억울함을 증명하는 세상 죽음으로 억울함을 증명하는 세상 뭔가 잘못됐다. 살고 싶으면 죽어야 하다니. “억울해 죽겠다.”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정말 죽을 만큼 억울하든지 아니면 ‘죽음’이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자기 과오를 덮으려는 의도이든지. 억울해 죽겠다는 말은 수만 번 해도 억울함을 증명하지 못한다. 죽음으로 증명하지 않는 한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억울하단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등지면 그보다 더한 억울함은 없다. 동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삶’이라는 가장 큰 유익을 포기하는 것으로 자기 억울함을 증명한다.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자신이 억울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존재가 사람이다. 국가의 수사권력은 범죄를 예방하고 진압한다. 수가권력이 가진 권한은 인권을 보호하려고 우리가 위임한 것이다. 헌법.. 2023. 12. 27.
교대근무 교대근무 아버지는 예수님 말씀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아버지는 저녁 아홉 시가 되면 거실에 하나밖에 없는 TV 앞 소파에 앉으셨다. 분명 세상 소식에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앉으셨는데,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소파에 푹 퍼지시더니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코를 드르렁 고신다. 늘 불만이었다. 다른 채널에서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예능이 한창 방영할 때인데 TV를 독차지하고선 주무시다니. ‘드르렁드르렁 퓨~’ 코를 고실 때면 이때다 싶어서 채널을 돌린다. 기척 없이 채널을 돌려도 아버지는 놀랍게 깨신다. 꿈속에서 도대체 뭘 드셨는지 쩝쩝 입맛을 다시며 말씀하신다. “야~ 뉴스 보고 있잖아.” 아니, 분명 방금 전까지 코 골며 주무시던 분인데. 뉴스를 보고 계신단다. 꿈과 현실에 경계가 없는 진정한 초인이시다.. 2023. 12. 12.
하루, 또 하루 하루, 또 하루 또 하루가 간다. 캄캄하고 고요한 방구석에서 노란 스탠드 불빛에 기대 키보드 자판을 두드린다. 시침과 분침이 '12'에서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눈 뒤 헤어진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잡고 싶어도 다시 잡을 수 없는 하루가.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 열한 살 큰 아들 하늘이, 아홉 살 둘째 아들 나라, 일곱 살 막내딸 리라, 나를 빼고 모두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항상 좋은 일만 있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었다. 하지만, 잠이 들기 전에는 늘 좋은 하루로 마무리가 된다. 사랑하는 아내와 하늘나라리라로 하루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서.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니고, 엄마아빠에게 딱 붙어있을 때, 손이 많이 필요했던 때는 '어서 컸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쳤던 때가 있었다. .. 2023.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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