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병원_윤동주

by 마빡목사 2024. 1. 11.
728x90
반응형

병원

윤동주_1940.12.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도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반응형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판 없는 거리_윤동주  (41) 2024.01.18
새로운 길_윤동주  (32) 2024.01.17
돌아와 보는 밤_윤동주  (39) 2024.01.10
눈 오는 지도_윤동주  (23) 2024.01.08
소년(少年)_윤동주  (29) 2024.01.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