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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창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by 마빡목사 2024.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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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한 말이다. 라틴어로 "Cogito ergo sum."이라고 한다. 

 데카르트가 남긴 이 유명한 말이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17세기 프랑스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은 오랫동안 기독교가 지배해 왔다. 천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기독교는 가장 권위 있는 권력이었다. 개인, 사회, 국가가 묻는 모든 질문에 답을 내리는 힘. 엄청난 권력이 교회에 있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 데카르트가 "확실한 진리, 그런 게 있을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회가 정한 답이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던 시절, 데카르트는 교회의 가르침을 절대 진리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도전이었다. 절대적 진리,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당시에는 매우 반역적이고 혁명적인 질문이었다. 

 이런 데카르트의 생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이야기가 있다. 첫째로, "이 사과는 빨간색이다."라는 감각적 판단 명제를 살펴보자. 이 명제는 진리의 확고한 후보가 될 수 있을까? 빨간 사과를 앞에다 두고, 그것을 빨갛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사과가 빨갛다는 명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인가? 아니다. 사과는 빨간색이다는 명제는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없다. 사과색은 풋사과의 색도 있고, 노란 빛깔과 빨간 빛깔이 섞여있기도 하고, 두 색의 중간 빛깔도 있다. 그렇다. 감각적 경험은 항상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물이 들어 있는 컵에 볼펜을 넣으면 휘어져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볼펜은 휘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감각적 경험은 확실한 진리가 아니다.

 둘째로, 데카르트는 일상 세계에 있는 존재를 살펴본다. 우리 주변에 여러 사물이 있다. 만질 수 있는 사물은 확실한 진리로 간주해도 좋지 않을까? 데카르트는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꿈을 꿀 때 실제가 아닌 일을 실제로 착각하기도 한다. 사물이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내 앞에 있다 하더라도 일단은 절대적인 확실한 실체로 간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수학적 진리를 살펴본다. 데카르트는 '1+1=2'라는 수식을 의심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절대적 진리인가? 예를 들어보자, 물 한 방울을 '1'이라고 한다면, 한 방울 더하기 한 방울은 여전히 물 한 방울이다. 물론 질량으로 따지면 2배가 된다 하더라도, 전제에서 물 한 방울을 '1'이라고 하면, 1+1=1이 되는 셈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이처럼 데카르트는 근본적인 회의를 품는다. 할 수 있는 한 계속 의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 확실한 진리, 절대적 진리란 세상에 없다. 다만, 모든 것을 의심해도, 스스로 의심을 하고 있는 주체(=데카르트)가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의 뜻이다.

 데카르트가 품은 이 질문이 중세를 탈피하는 종교개혁을 촉발하고, 근대를 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절대 권력이라고 부르던 교회 권력에 저항하여 생각하는 존재로서 자유로운 인간 존재를 세상에 알린 용기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우리에게 생각하는 존재로서 주체성을 일깨운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인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존재의 의미조차 모를 수 있다."

[자료 출처] 철학이 내 손을 잡을 때, 김수영, 우리학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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