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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글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by 마빡목사 202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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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씁쓸한 명작 영화를 봤다. 몹시 잘 만든 영화인데, 입맛이 쓰다.

 영화 제목인 '서울의 봄'은 전두환 신군부의 12.12 쿠데타와 대척점에 서 있는 말이다. 감독은 왜 제목을 '서울의 봄'이라고 했을까? '서울의 봄'은 원래 1979년 10월 26일에서 1980년 5월 17일 사이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 시기를 말한다.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직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군 내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군부를 장악했다. 계급과 상관없이 '하나회'라고 불리는 사조직을 동원해 막강한 힘으로 정치적 실세가 되었다. 전두환이 중심이 된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정권을 사실상 장악했다. 이때 비상계엄에 저항한 광주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공수부대를 투입해 강경 진압했다. '서울의 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낳았고, 전두환이 투입한 공수부대가 자국민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수많은 희생자를 남긴 채 끝이 났다. '서울의 봄'은 아름다웠으나 '광주의 초여름'은 비참했다. 

 영화는 '서울의 봄'이 시작되기 전 10.26에서 12.12까지, 실제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았다. 영화 내용은 '서울의 봄'이 아니라 '서울의 겨울'이자 '대한민국의 겨울'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한 하나회 중심 신군부 패거리들'과 '사적이익이 아닌 나라에 충성하는 참 군인'을 영화는 대조적으로 그린다. 전두환(영화에서 전두광, 황정민 역)과 수도방위사령관 장태완(영화에서 이태신, 정우성 역)이 대립하는 중심 인물이다. 극하게 대립하는 세력 사이에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장관과 장군들(중장 이상)이 있다. 무능력한 장관과 장군들에게 군인정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자기 살길을 찾아 찍찍대는 생쥐같아 보일 뿐. 지금은 과연 어떨까?

 전두환 쿠데타는 성공했다. 이를 막아서려 했던 참 군인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영화는 권선징악의 쾌감을 주기보다, 현실의 씁쓸함을 안긴다. 악이 승승장구하고 선이 무너진 대한민국 역사의 현실을 똑똑히 보여준다. 지금도, 악이 승승장구하고 선이 짓밟히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이 영화를 통해 전두환과 하나회 신군부의 악행에 저항했던 인물을 새로 알게 되었다. 실제 역사에서 전두환에 맞선 세 중장 수도방위사령관 장태완, 특전사령관 정병주, 육군 헌병감 김진기, 그리고 참군인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 지하벙커를 지키다 숨진 국방부 헌병대 정선엽 병장이다. 이들은 영웅이다. 쿠데타 세력에게 져서 목숨을 잃을 줄 알면서도 '위국헌신' 군인정신을 잃지 않았던 영웅이다. 안타깝게도 영웅들의 이후 삶은 처참했다.

 영화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장태완 사령관은 이후 서빙고분실에서 고초를 겪는다. 풀려난 후에는 강제 예편되었고, 6개월 동안 가택연금도 당했다. 장사령관의 아버지는 아들의 처지에 슬픈 나머지 곡기를 끊고 술만 마시다 1980년 세상을 떠났다. 2년 뒤, 1982년에는 서울대생이던 장태완 사령관 아들이 할아버지 산소 옆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의문사로 남았다. 일가족이 풍비박산났다. 이후 전두환·노태우씨가 법의 심판을 받으면서 장태완 사령관은 ‘참군인’으로 재조명된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인으로 제2의 인생을 이어갔다. 2010년 7월26일 79살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러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2년 뒤 장태완 사령관의 아내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참고: 한겨레 ‘서울의 봄’ 참군인 정우성·정해인…실제 삶은 더 참혹했다[영상]).

 또, 정해인이 연기한 김오랑 소령도 기억해야 한다. 1979년 12월13일 새벽, 반란군에 가담한 3공수여단 10여명이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겠다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실로 들이닥쳤다. 사령부에 전투 병력은 많지 않았다. 정병주 사령관의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만이 곁을 지켰다. 신의가 있는 군인, 그리고 충성스러운 장교였다. 김오랑 소령은 권총 한자루로 반란군과 총격전을 벌였다. 결국 김소령은 M16 소총에서 발사된 실탄을 여러발 맞고 숨졌다.

 이때,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왼팔에 총탄을 맞았다. 정병주 사령관 역시 강제 예편 당했다. 그뒤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다 행방불명됐다. 결국 1989년 3월 서울 교외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사인을 자살로 결론을 냈다. 그러나 당시 한겨레, 중앙일보 등 여러 언론은 ‘의문의 죽음’ 이라 전했다.

 김오랑 소령의 아내 백영옥씨는 남편이 죽은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가 되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됐다. 백영옥씨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1991년 6월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을 내렸다. 김오랑 소령은 1990년(노태우)에야 중령으로, 2014년(박근혜)에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지하벙커를 지키다 숨진 정선엽 병장은 전역을 3개월 앞둔 채 반란군과 맞서다 희생당했다.

 비록 전두환 쿠데타의 성공으로 영웅들의 위국헌신이 빛을 바랬지만, 거대한 폭력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맞선 영웅들의 이야기가 가슴 깊숙한 곳에 뜨겁게 타오르는 무언가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결국 그렇게 불의의 저항한 '진리의 친구들',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정의를 지키려고 싸웠던 그들이 있었기에, 전두환과 노태우는 법정에 섰고, 감옥에 갔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 전두환은 병들어 죽기까지 희희락락 골프도 치고 호화음식도 먹고 즐겁게 살았다. XX.

 더 비참한 것은 영화 개봉 다음날인 23일 서울 광화문에서 퇴역군인 단체와 일부 시민단체가 전두환 2주기 시민 추모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그들은 거기서 전두환을 추모했다. 전두환씨의 미납추징금은 아직도 920여억원이다(한겨레 ‘서울의 봄’ 참군인 정우성·정해인…실제 삶은 더 참혹했다[영상])

 

‘서울의 봄’ 참군인 정우성·정해인…실제 삶은 더 참혹했다 [영상]

영화 속 사실과 허구는

www.hani.co.kr

 사람답게 살려면 전두환의 길을 걸어야 하나 아니면 장태완의 길로 가야하나? 눈 딱 감고 한 번만 굴복하면 누구나 갈 수 있다는 전두환의 길을 갈 것인가? 죽음을 각오하고 명분을 지키려 싸우는 장태완이 될 것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사람으로)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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