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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고

by 마빡목사 202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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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_유시민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저자_유시민, 출판사_돌베개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책표지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책 표지 (유시민 지음, 출판사 돌베개)

 

과학교양서가 아닌 '과학을 소재로 한 인문학 잡담'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자칭 '운명적 문과'인 유시민 작가 스스로 과학을 공부하면서 과학 세계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바꿔 쓴 책이다. 말 그대로 '과학을 소재로 한 인문학' 도서이다. 유시민 작가도 서문에서 밝힌다. 이 책은 과학교양서가 아니다. 과학의 언어가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문과생이 '거만한 바보' 수준을 겨우 넘을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유시민 작가의 솔직함이 나는 좋다. 진정한 지식인은 자기 자신이 아는 게 어느 정도 인지, 모르는 게 어느 정도 인지 아는 사람 아닐까.  

겸손하다고 해야 하나? 솔직한 유시민 작가의 태도가 돋보이는 서문이다.

 

과학시대, 찌그러진 인문학을 진단하다

 과학기술시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일컫는 이름 중 하나이다. 과학의 언어가 세상에서 합리적이고 신뢰받는 시대. '과학적이다'라는 수식어만 붙여도 신뢰를 보장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이 점차 고도화되고, 발전하면서 상대적으로 이전까지 학문을 주름잡았던 인문학이 오늘은 꽤 찌그러졌다.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목적은 같으나 인문학과 과학은 방법이 여러 면에서 다르다.

 유시민 작가는 과학을 공부하고 나서 '과학이 인문학에 미친 영향이 인문학이 과학에 준 영향을 압도한다'라고 말한다. 시대에 따라 유시민 작가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은 유시민 작가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기술시대 아닌가? 유시민 작가는 과학의 공헌을 찬양하듯 인정하면서도 인문학이 왜 찌그러지게 되었는지, 인문학과 과학이 통섭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개인적 바람도 이 책에 담았다. 

 

인문학자는 모른다고 하지 않고, 그럴싸한 말을 한다.
하지만 과학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나눈다.

 작가 자신이 인문학자이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문학자는 모르는 것을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유시민 작가가 보기에 '과학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나눈다'라고 말한다. 인문학이 질문하는 건 주로 이런 거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어떤 삶이 훌륭한가? 죽은 뒤에 어디로 가는가? 어떤 힘이 사회 질서와 문화를 바꾸는가? 역사에 정해진 방향이 있는가?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등 과학이 아직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무언가'에 관한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인문학적 대답은 나중에 '과학적 발견'에 지지를 받기도 하지만, 어떤 대답은 터무니없던 것으로 치부당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인문학은 여전히 과학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나는 그것이 인문학이 가진 힘이고 장점이라 생각한다. 인문학적 대답이 과학적 발견으로 지지를 받아 '믿을만한 사실'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나는 그보다 인문학으로 얻는 인류의 상상력이 과학으로 채울 수 없는 커다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과학적 발견의 지지가 없을지라도. 또, 인문학 그리고 신학만이 말할 수 있는 윤리적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책에서 과학의 권위는 대단하다. 유시민 작가는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이고, 과학자들의 발견은 선생이었다. 책 전반에서 작가의 태도는 과학적 발견을 공부하는 학생처럼 흡수한다. 기존 우리가 보던 유시민 작가의 날카롭고 차가운 비판적 태도보다 상냥하게 자기가 공부한 과학을 설명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인문학적 언어로 과학을 설명한 과학자를 향한 칭송이 낯간지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외계어 같은 과학의 언어를 친절하게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려는 노력을 어찌 칭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과학의 언어가 외계어로 보이는 '문과생'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만하다.

 어쨌든 나탈리 앤지어의 말을 인용하여 과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과학은 사실을 많이 아는 것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나탈리 앤지어/김소정 옮김 ⌜원더풀 사이언스⌟ 

 

통섭: 지식의 대통합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통섭'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교양교육에 몸 담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어쨌든 과학적 연구방법인 환원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얻은 지식들을 통합하자는 주장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과학만도 아니고, 인문학만도 아니고, 신학만도 아니다. 다양한 지식을 연합하여 전체 세계를 이해하는 넉넉하고 따뜻한 안목을 갖는 태도가 필요하다. 과학자에게도, 인문학자에게도, 신학자에게도. 

 

기본적인 과학 개념의 이해와
문과생으로서 과학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는 책

 '과학적이다'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물리학, 화학, 생물학, 수학 등 문과생이라면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향연이다. 지루하지 않다. 천생 문과생이 쓴 책이어서 읽는 게 어렵지 않다. 유시민 작가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후기에서 유시민 작가는 과학자가 가급적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힌다. 오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굉장한 가치가 있다. 과학의 언어를 한 번도 접하지 않은 채 무작정 과학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신앙인에서 '과학적이다'라는 말을 지나치게 신봉하는 사람 등 극단에 있는 사람에게 적절한 처방이 될 책이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유시민을 '무신론자'라고 프레임을 씌운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은 책이 아니다. 유시민은 이 책에서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밝힌다. 자기는 신에게 의지하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이 책을 읽은 기독교 목사의 눈으로 본 유시민의 '신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라는 말은 '종교의 폭력'에 굴복하여 자기 자유를 스스로 옥죄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유시민 작가를 뿔 달린 무신론자로 보지 말고, 이 책에 담긴 과학의 기본적인 개념과 과학의 원리들을 배운다면 아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책 내용을 대략 가늠할 수 있도록 책 목차와 소제목을 아래에 첨부한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_목차와 소제목

서문_과학 공부의 즐거움

1. 그럴법한 이야기와 확실한 진리 "인문학과 과학"
 _거만한 바보
 _운명적 문과의 슬픔
 _인문학과 과학의 비대칭
 _우리 집과 우리 엄마의 진실

2. 나는 무엇인가 "뇌과학"
 _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_1.4킬로그램의 우주
 _신경세포와 경제법칙
 _현상과 사물 자체
 _칸트 철학과 양자역학
 _측은지심과 거울신경세포
 _자유의지

3.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생물학"
 _좌파, 우파, 다윈주의
 _생명의 알파벳
 _유전자와 인생론
 _생물학 패권주의
 _사회생물학과 사회주의
 _이타 행동의 비밀

4. 단순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화학"
 _화학은 억울하다
 _위대한 전자
 _주기율표
 _탄소, 유능한 중도
 _환원주의 논쟁
 _통섭의 어려움

5.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물리학"
 _불확정성 원리
 _상대성 이론
 _별에서 온 그대
 _양자역학, 불교, 유물변증법
 _엔트로피 묵시록

6. 우주의 언어인가 천재들의 놀이인가 "수학"
 _수학의 아름다움
 _천재들의 지적 유희
 _난 부럽지가 않아

후기_바보를 겨우 면한 자의 무모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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