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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이야기

성경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ep.01

by 마빡목사 202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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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ep.01

[정보출처: 대한성서공회]

  가장 오래된 구약 본문

  1947년에 '사해 사본'을 발견하기 전까지, 구약 본문 단편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자료는 나쉬 파피루스(Nash Papyrus)였습니다. 나쉬 파피루스는 1902년에 이집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원전 2~1세기에 기록된 십계명이 담겨있었습니다. 또,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 그리고 신명기 6장의 '셰마'(6장 4-5절) 등이 섞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본문은 성서 사본이 아니라 예배서에 인용된 본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비평을 위한 자료로 쓰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나쉬 파피루스
나쉬 파피루스(BC 2-1세기)_이미지출처: 대한성서공회

  최근에 나쉬 파피루스보다 더 오래된 자료가 발견되었습니다. 1979년에 예루살렘의 케텝 힌놈에서 아주 작은 은(銀) 두루마리(minute silver roll) 조각 두 개가 발굴되었습니다. 민수기 6장 24-26절이 고대 히브리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연대를 측정해 보니 기원전 7∼6 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또한 성서 사본이 아니고 성서 구절을 인용한 단편이어서 본문 비평을 위한 자료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케텝 힌놈 은 두루마리
케텝 힌놈 은 두루마리(민6:24-26절, BC 7-6세기)_이미지출처: 대한성서공회

  그렇다면, '성서'라고 부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사본은 무엇일까요?

  사해사본

  사해사본은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 사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47년부터 1969년까지 약 20여 년 동안 사해 서북부 유대 광야에서 '유대 광야 두루마리' 또는 '사해 두루마리'로 불리는 구약 사본을 발견했습니다. 열한 개의 동굴에서 「에스더기」만을 제외한 구약의 모든 옛 사본들이 여러 종류 발견되었습니다. 거기서 발견된 여러 종류의 사본은 주전 2세기부터 주후 1세기에 기록된 사본으로 추정합니다. 이사야 문서는 기원전 335년에서 기원후 107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해사본은 현존하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보다 천년 이상이나 더 옛 것이어서 구약 성서 사본 중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사해사본은 구약 본문이 확정된 때 보다 이전의 본문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구약 본문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쿰란 지역에서 발견한 사해 사본을 비롯해서 발굴 문헌들 중에 해독되고 공개된 모든 자료는 마이크로휘쉬 자료에 담아 '대한성서공회 성서학문헌정보자료실'에 비치해 두었다고 합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거기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문서는 예루살렘 '지혜의 신전'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유대 광야 두루마리의 발견은 20세기에 발견된 다른 어느 고고학적 발견보다도 성서학계에 커다란 흥미와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1947년 겨울, 이 엄청난 발견은 사실 우연이었습니다. 사해 서북부 유대 광야는 약 2천여 년 동안 아무도 정착한 적이 없는 불모지였습니다. 다만, 기원전에 한때 '엣센파'라고 하는 유대교의 한 종파가 이 일대에서 살았을 뿐이고, 지금은 아랍 유목민이 계절을 따라 옮겨 다니는 황량한 들판에 불과합니다. 아랍 유목민 중 한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 계곡을 훑다가 우연히 한 동굴에서 단지 안에 보관되어 있는 사본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이후 수많은 단편이 이 일대에 있는 동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사해 사본이 발견된 쿰란의 4-5동굴_이미지출처: 대한성서공회
사해 사본이 보관되어 있던 단지_이미지출처: 대한성서공회

  단지 안에서 발견된 사본

1. 이사야서 사본 1QI saa(1-66장)

2. 이사야서 사본 1QI sab(주로 38-66장 부분)

쿰란 제1동굴에서 발견된 이사야서 사본_이미지출처: 대한성서공회

3. 하박국서 주석(The Habakkuk Commentary)

의로운 교사와 악한 제사장을 설명하는 하박국서 주석_이미지출처: 대한성서공회

4. 훈련 교본(The Manual of Discipline)

공동체의 규칙과 교리를 해설하는 훈련교본_이미지출처: 대한성서공회
공동체의 규칙과 교리를 해설하는 훈련교본_이미지출처: 대한성서공회

5.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 사이의 싸움(The War of the Children of Light against the Children of Darkness)

6. 감사 찬송(Thanksgiving Hymns)

7. 외경 창세기(Genesis Apocryphon)

라멕, 노아, 아브라함 등이 중심 인물로 나오는 외경 창세기_이미지출처: 대한성서공회
라멕, 노아, 아브라함 등이 중심 인물로 나오는 외경 창세기 본문

  발견과정

[자료출처: 위키피디아]

  사해사본은 1946년 11월, 젊은 베두인 목동이 처음 발견을 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안 고고학자 E.L. 수케닉(E. L. Sukenik)은 베두인에게서 사해사본을 구매했습니다.

  사해사본 두루마리는 11개의 동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쿰란 주거지에서 적게는 125m (제4동굴)에서 1km (제1동굴)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던 주거지에서 발견된 문서는 없었습니다. 염소와 양을 치는 베두인 모함메드 아흐메드 엘-하메드 (별칭 에드-디브, "늑대")가 1946년 11월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양치기가 잃은 동물을 찾으려고 돌멩이를 동굴에 던졌는데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나서 동굴 속으로 들어갔고, 거기에서 오래된 항아리에 들어있는, 면에 싸여 있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존 트레버 박사는 모함메드 에드-디브라는 사람에 대해 여러 사람과 인터뷰를 했지만 모두 기본적으로 이 이야기를 포함한 여러 변형된 이야기들이었다고 합니다.

  이 두루마리들은 골동품 상인인 이브라힘 이즈하(Ibrahim 'Ijha)가 베들레헴에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시나고그에서 훔쳤다는 의혹 때문에 그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후 이 문서들은 칸도라고 불린, 칼릴 에스칸더 샤힌(Khalil Eskander Shahin, "Kando")이라는 도굴꾼이자 골동품 상인에게 넘어갔습니다. 처음 베두인들이 이 문서를 발견했을 때에는 세 개의 두루마리를 꺼냈는데, 칸도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나중에 동굴에 다시 들어가 더 많은 문서들을 꺼내오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칸도가 적어도 네 개의 두루마리를 불법적으로 발굴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베두인에게서 건네받은 문서들은 제삼자에게 흥정을 통해 넘어갔습니다. 그중 하나는 시리아 정교회의 일원인 게오르게 이샤야(George Isha'ya)였습니다. 그는 곧 이 문서의 정체를 문의하려고 성 마가 수도원에 접촉했습니다. 이러한 발굴 소식은 메트로폴리스 주교 아타나시우스 예수에 사무엘(Athanasius Yeshue Samuel)에게 전해졌습니다.

  문서를 조사하고 나서 오래된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마르 사무엘은 이를 사는 데 관심을 보입니다. 4개의 두루마리들을 곧 사게 되었고, 이들은 현재 유명한 이사야 사본 (1 QIsa)과, 공동체 규칙, 하바꾹 페샤르(하바꾹 주석)과 창세 묵시록입니다. 또 다른 두루마리들이 고문서 시장에 나돌았습니다. 이스라엘 출신 고고학자이자 히브리 대학의 교수인 엘레이저 수케닉(Eleazer Sukenik)이 두루마리 3개를 얻었습니다. 이들은 전쟁 두루마리, 추수감사 찬송과 이사야 문서의 단편들이었습니다.

  1947년 말까지, 수케닉은 마르 사무엘이 가지고 있는 문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사려고 시도했습니다. 거래는 결국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미국 동방 연구소(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ASOR)에서 일하는 존 트레버 박사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트레버 박사는 이 문서에 기록된 구절을 당시 가장 오래된 성경 사본인 내쉬 파피루스와 비교했고, 이 둘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트레버 박사는 마르 사무엘을 1948년 2월 21일에 만나 두루마리의 사진을 찍습니다. 나중에 어떤 사진은 사본 자체보다 보관 상태가 더 좋기도 했습니다. 사본들의 면 커버를 제거하고 나서 사본이 사그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해 3월에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사본의 안전을 위해 문서들을 이동해야 했습니다. 사본은 베이루트로 옮겨졌습니다.

  1948년 9월 초, 마르 사무엘은, ASOR의 새 소장인 오비드 셀러스에게 새롭게 얻은 사본들의 단편을 가지고 갑니다. 그 해 말, 학자들은 사본이 발견된 동굴의 위치를 알아내게 됩니다. 당국에서 불편하게 여겼기 때문에,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셀러스는 시리아인들의 도움을 받아 동굴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셀러스가 주겠다고 한 돈보다 훨씬 더 비싼 돈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제1동굴은 1949년 1월 28년에 국제 연합의 조사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각 동굴에서 발견된 문서

제2동굴

  베두인들은 제2동굴에서 단편 30개를 발견합니다. 이중에는 고대 히브리어로 된 희년서(Jubilees)와 집회서(ben Sirach)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3동굴

  동으로 된 문서가 제3동굴에서 발견됩니다. 이스라엘 전역의 지하의 비밀 장소 64곳에 묻힌 보물들의 목록이 들어 있습니다. 금, 은, 향료,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보관되어 있던 보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4동굴

  1950년 말부터 40%의 문서들이 제4동굴에서 발견됩니다. 하지만 출판되지 않아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5에서 제6동굴

  제5, 제6동굴은 제4동굴이 발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되었습니다.

제7에서 제10동굴

  고고학자들은 제7동굴에서 제10동굴까지 1955년에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문서가 들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7동굴은 그리스어 문서 17개(7Q5를 포함)를 담고 있습니다. 제8동굴은 단편 5개가 있었으며, 제9동굴은 단 하나의 단편만이 있었습니다. 제10동굴에는 도편만이 들어 있었습니다.

제11동굴

  성전 문서가 제11동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긴 두루마리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의 길이는 8.148미터입니다. 내용으로 짐작할 때 원래 길이는 8.75미터로 추정됩니다.

 

다음 편은 맛소라 사본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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