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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9

교대근무 교대근무 아버지는 예수님 말씀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아버지는 저녁 아홉 시가 되면 거실에 하나밖에 없는 TV 앞 소파에 앉으셨다. 분명 세상 소식에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앉으셨는데,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소파에 푹 퍼지시더니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코를 드르렁 고신다. 늘 불만이었다. 다른 채널에서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예능이 한창 방영할 때인데 TV를 독차지하고선 주무시다니. ‘드르렁드르렁 퓨~’ 코를 고실 때면 이때다 싶어서 채널을 돌린다. 기척 없이 채널을 돌려도 아버지는 놀랍게 깨신다. 꿈속에서 도대체 뭘 드셨는지 쩝쩝 입맛을 다시며 말씀하신다. “야~ 뉴스 보고 있잖아.” 아니, 분명 방금 전까지 코 골며 주무시던 분인데. 뉴스를 보고 계신단다. 꿈과 현실에 경계가 없는 진정한 초인이시다.. 2023. 12. 12.
하늘이 하늘이 부스럭부스럭. 이른 아침, 주방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눈을 뜬다. 누군가 찬장과 그릇장을 요란하게 여닫는다. 주방 곳곳을 뒤적이다 갑자기 숨을 죽인다.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느린 손짓으로 비닐 봉지를 움켜지는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깬다. ‘촥!’ 과자 봉지가 뜯기며 동시에 고막에 경보가 울린다. 잠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현장을 덮친다. “잡았다! 이놈.” 암행어사 행세를 하는 아빠를 보고도 첫째 아들 하늘이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놀란 기미가 전혀 없다. 이미 입안에 과자를 한가득 채우고 오물거린다. 능글맞은 눈매로 아침 인사를 건넨다. “아빠, 잘 주무셨어요?” 해가 얼굴을 드러내기 전부터 밥 대신 과자를 찾아 먹는 아들에게 핀잔이 터져 나오려다 입술에 걸터앉았다. .. 2023. 11. 7.
단풍비 단풍비 가을 끝자락, 햇볕 좋은 토요일이다. 입동이 지나서인지 아침저녁으로 코끝과 손끝이 시리다. 정오 햇볕이 마치 엄마 품에 안긴 듯 따뜻한 온기로 나를 감싼다. 모처럼 포근하게 찾아온 가을 햇볕이 반가워 마음껏 누리고 싶다. 이러한 여유도 잠시, 오늘 역시 일하러 가야 한다. 차에 올라 전주 모 교회로 향했다. 오늘 교회에서 교사 강습회를 한다. 두 달 남짓 나와 몇몇 연구원이 함께 개발한 성탄절 교육 프로그램을 전북지역 교회학교 교사에게 소개한다. 차를 운전해 교회로 출발할 때, 강습회 예행연습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몰라 두통이 불청객같이 찾아왔다. 집에서 교회로 가려면 전주 시내로 들어가는 춘향로를 타고 전주 천변을 지나야 한다. 대략 30분 남짓 되는 거리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춘향로로 .. 2023. 11. 2.
선물 선물 통장 잔고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지갑이 텅 비었다. 한편, 마음은 따뜻했고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들을 데리고 서울을 다녀왔다. 모야모야병으로 수술을 한 후 삼 년 동안 네 번, 올해로 다섯 번째 외래 진료다. 병원 나들이는 어느새 둘째 아들과 나, 둘 만의 서울 나들이가 되었다. 둘째 아이는 왼쪽과 오른쪽 머리에 혈관을 심는 수술을 하려고 각각 6개월 간격을 두고 두 번, 수술 후 경과를 보려고 MRI검사를 또 두 번, 서울 병원에 오고 가곤 했다. 경과가 좋아서 예약해 놓은 MRI검사와 외래 진료를 받으러 2021년도 이후 2년 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올해는 하필 추석연휴와 개천절까지 끼어서 열차표를 예매하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표를 .. 202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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