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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4

위로(慰勞)_윤동주 위로(慰勞) 윤동주_1940.12.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뒤뜰 난간과 꽃밭 사이 사람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옥외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쳐다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 마리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노─란 날개를 파닥거려도 파닥거려도 나비는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 거미는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몸을 감아 버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보담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病)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慰勞)할 말이─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 위로(慰勞)의 말이 없었다. 2024. 4. 3.
이름 없는 국화 이름 없는 국화 국화 한 송이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든다. 시월의 끝자락, 차가운 가을바람에 국화가 애처롭게 흔들린다. 국화를 가슴에 끌어당긴다. 조금이라도 체온을 전하고 싶다. 눈을 감는다. 세상을 떠난 이와 남겨진 이를 위해 신께 기도한다. “주여, 저들을 위로하소서.” 그러나 위로하는 기도가 메아리처럼 다시 돌아온다. 눈을 감고 신께 위로해 달라 몇 번이고 기도해 보지만, 위로는 허망하게 되돌아오고 만다. 답답한 마음에 이 참사가 발생할 때 당신은 무얼 했냐 따져 물으니 신은 내게 질문한다. “너는 누구에게 위로를 전하는 가. 희생자의 이름조차 모르는 너, 얼굴도 모르는 네가 어떤 위로를 한단 말인가. 너는 그저 막연하게 거대한 슬픔의 바위 앞에서 무기력하게 고개 숙이며 눈물을 삼킬 뿐, 무엇을 할.. 2023. 10. 28.
지쳐버린 너에게 지쳐버린 너에게, 많이 힘들지? 왜 내가 이런 싸움을 해야 하나 싶을 거야. 맞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넌 그저 잘못된 걸 바로 잡고 싶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망치는 건 금방인데, 세우는 건 꽤 힘든 거야. 젠가처럼 말이야. 어두운 터널을 마주한 기분 같을 거야. 저 깊은 어둠에서 뭐가 나올지 몰라 두렵고 불안하지. 그렇지만 꼭 저 터널을 홀로 통과해야 하는 너에게, 어떻게 위로를 건넬지 참 어렵다. 격려해줄 말도 딱히 생각나질 않아. 격려한단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될까 봐. 벽이 돼야지. 단단한 벽 말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기댈 수 있잖아. 우리 서로 그냥 단단히 서 있기만 하자.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게. 그래. 우리 그렇게 버텨내자. 우리가 옳다면 꼭 기쁨의 순간이 찾.. 2023. 9. 24.
문병란 시인이 쓴 '희망가' 살다 보면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하루살이가 이틀을 모르듯, 사람은 늘 다가온 시련을 영원처럼 느낄 때가 많다. 시간의 지평선, 어디쯤인지 알지 못하므로. 오늘 만난 시련이 너무 힘들어서 버거울 때, 감내할 고통의 늪이 질척거릴 때, 나는 문병란 시인이 쓴 '희망가'를 떠올린다. 오늘 어디선가 눈물을 삼킬 그대와 함께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희망가 문병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 2023.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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