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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름 없는 국화

by 마빡목사 2023.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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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국화

  국화 한 송이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든다. 시월의 끝자락, 차가운 가을바람에 국화가 애처롭게 흔들린다. 국화를 가슴에 끌어당긴다. 조금이라도 체온을 전하고 싶다. 눈을 감는다. 세상을 떠난 이와 남겨진 이를 위해 신께 기도한다.

  “주여, 저들을 위로하소서.”

  그러나 위로하는 기도가 메아리처럼 다시 돌아온다. 눈을 감고 신께 위로해 달라 몇 번이고 기도해 보지만, 위로는 허망하게 되돌아오고 만다. 답답한 마음에 이 참사가 발생할 때 당신은 무얼 했냐 따져 물으니 신은 내게 질문한다.

  “너는 누구에게 위로를 전하는 가. 희생자의 이름조차 모르는 너, 얼굴도 모르는 네가 어떤 위로를 한단 말인가. 너는 그저 막연하게 거대한 슬픔의 바위 앞에서 무기력하게 고개 숙이며 눈물을 삼킬 뿐,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름 없는 국화가 잔뜩 쌓인 분향소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만다. 희생자를 추모한다면서 156명 중 단 한 사람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처럼 희생자의 이름과 얼굴도 모른다. 유가족은 셀 수 없이 울부짖었을 그 이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을 그 얼굴. 이름을 함께 부를 수 없고, 얼굴을 함께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위로를 전할까.

  156명* 자녀가 참사에 희생당했다. 엄마아빠가 돌아가시면 '엄마, 엄마, 아빠, 아빠' 하며 같이 울 수 있다. 하지만 자녀는 그렇지 않다. 이름을 불러야 한다. 웃는 얼굴이 새겨진 영정사진을 붙들고 함께 울어야 한다. 국가가 애도기간을 정했지만, 이름 모를 애도는 끝맺을 수 없다. 부모가 받을 위로에 감히 누가 기간을 정한단 말인가!

  세월호 참사 때, 교회에서 부활절을 맞아 미수습자 가족을 만나러 목포신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선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옆으로 누운 세월호와 철조망에 묶여 바람에 휘날리는 노란 리본을 보며 신께 기도했다. 당시에도 미수습자 이름을 모른 채 막연히 기도했다. 예배가 끝나고 난 뒤 유가족 중 두 분을 만났다. 두 분은 자신을 ‘OO엄마’로 소개했다.

  나는 두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것이 터져 나왔다. 울음이 폭발해 숨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내 위로에 담긴 위선이 부끄러웠다. OO엄마는 셀 수 없이 외쳤을 딸의 이름을 그제야 알았던 나를 원망했다. 유가족이 된 두 엄마가 당부했던 건, 이름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름을 알아야 수습을 바라는 기도를 할 수 있으니까.

  그때와 같이 이름 없는 국화 앞에서 부끄러움과 원망이 뒤얽힌다. 까맣게 응어리진 가슴속 숯덩이에 시뻘겋게 불이 붙는다. 이름조차 알 수 없게, 그래서 그 이름조차 부를 수 없게 만든 이가 누구인가. 수 없이 많은 추모객에게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겉치레뿐인 애도를 강요한 자가 누구인가. 내가 만약 유족이라면 이 위로는 거부했으리라.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전하는가 쉰 목소리로 물으리라.

  함께 이름을 부르며 위로하고 싶다. 이름만 입 밖으로 새어 나와도 눈물이 흐를 당신, 울음이 터져 나와 호흡을 가누지 못해 이름도 제대로 외칠 수 없을 당신을 위해 대신 이름을 부르고 싶다. 이름을 외치면 고통 없는 하늘나라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다 대답하는지 안부를 묻고 싶다. 이름을 알려주오.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당신의 얼굴도 알려주오.

  참사가 있은 지 일주일이 지난 주말에 학회가 있어 상경했다. 용산역에 내렸는데, 서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했다.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 속에 참사가 남긴 슬픔은 모두 묻혔는가. 국가가 정한 일주일 애도기간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진정한 위로였는가 되돌아볼 여력도 없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대한민국 서울의 시계는 슬픔에 묻힌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잊지 말아야 하는데, 기억해야 할 이름이 없다. 10월 29일 이태원에서 꽃 피우지 못한 청춘 156명이 참사로 희생당했다는 사실 외에 잊지 말아야 할 이름이 없다. 유가족은 오늘도 자녀를 잃은 슬픔의 무게를 외로이 버텨내야 한다. 이름 없는 위로가 과연 유가족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매년 찾아올 10월 29일의 슬픔을 유가족이 견딜 수 있을까. 함께 기억하며 불러야 한다. 156명의 이름을.

  다시 두 손을 모아 국화 한 송이를 든다. 여전히 국화는 이름이 없다. 바람은 더 차가워졌다. 신에게 구하는 기도는 달라졌다.

  “주여, 저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이름을 부를 때마다 당신의 품에 그를 안아주소서.”

  이 기도는 10.29 참사 희생자의 이름을 알 때까지 울부짖을 것이다. 진정한 위로는 유가족이 목이 쉬도록 부를 자녀 이름을 함께 외치고 기억할 때 시작할 수 있다.

  “주여, 이름을 함께 부를 수 있게 하소서.”

*10.29 참사 희생자는 총 159명이다. 글을 쓸 당시 희생자는 156명이었으나, 사고 이후 희생자가 3명이 늘었다....
*1주기 시민추모대회 추진위원 가입하기: 1만원 이상 납부하면 추진위원으로 자동 가입된다.
  추진위원 가입 카카오뱅크 7979-73-98201 심규협(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모임 통장)

1029 참사 온라인 추모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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