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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단풍비

by 마빡목사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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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비

  가을 끝자락, 햇볕 좋은 토요일이다. 입동이 지나서인지 아침저녁으로 코끝과 손끝이 시리다. 정오 햇볕이 마치 엄마 품에 안긴 듯 따뜻한 온기로 나를 감싼다. 모처럼 포근하게 찾아온 가을 햇볕이 반가워 마음껏 누리고 싶다. 이러한 여유도 잠시, 오늘 역시 일하러 가야 한다. 차에 올라 전주 모 교회로 향했다.

  오늘 교회에서 교사 강습회를 한다. 두 달 남짓 나와 몇몇 연구원이 함께 개발한 성탄절 교육 프로그램을 전북지역 교회학교 교사에게 소개한다. 차를 운전해 교회로 출발할 때, 강습회 예행연습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몰라 두통이 불청객같이 찾아왔다. 집에서 교회로 가려면 전주 시내로 들어가는 춘향로를 타고 전주 천변을 지나야 한다. 대략 30분 남짓 되는 거리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춘향로로 향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춘향로로 가는 길 양쪽에는 벚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벚나무는 가을 빛깔을 진하게 물들인 단풍잎을 꽃잎처럼 흩날리며 “강습회 잘하고 와.”하며 나를 격려했다. 벚나무 단풍에 강습회에 대한 시름을 좀 놓을까 했는데, 춘향로로 빠지는 교통섬을 지나니 다시 긴장이 높아졌다.

  전주 한옥마을이 가까워지면서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노랑 단풍비를 보았다. 아파트 삼층 높이 키에 연륜이 짙은 은행나무에서 샛노란 단풍비가 살랑살랑 내려앉으며 춘향로를 적셨다. 삭막했던 춘향로는 어느새 눈부시게 아름다운 황금 카펫 길이 되었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내린 단풍비가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감성을 적셨다. 일한다는 핑계로 미뤘던, 아니 어쩌면 애써 외면했던 가을 낭만에 사로잡혔다. 가을 낭만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나를 찾아왔지만, 나는 참 무심하게도 그에게 눈길 한번 줄 겨를이 없었다.

  빙글빙글 춤을 추며 여유 있게 내리는 단풍비 사이로 아이 셋이 뛰어논다. 가로수길에 사람은 없고 단풍비만 내리는데, 아이 셋이 깔깔 웃는 웃음소리가 해맑다. 내 아이들이 단풍비 사이로 뛰어놀며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보내는 것으로 잠시 착각했다. 단풍비가 선사한 천상의 황홀감은 순식간에 나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온 가족이 함께 단풍비 사이에서 뛰어노는 환상은 찰나였다.

  가을 낭만에 흠뻑 젖어 내가 일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물었다. “왜 이렇게 일에 파묻혀 살지?” 올해 다시 찾아오지 않을 가을 끝자락 단풍비 내리는 순간을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보내지 못해 쓸쓸하고 외로웠다.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순간을 누리려 일하는데, 정작 일하느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현실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일보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가족과 함께 누리는 게 더 중요한데.

  나는 독자로 태어나 가정을 이루기 전까지 외롭게 살았다. 어머니는 처녀 때부터 교회 전도사로 일하느라 나보다 교회 일이 늘 먼저셨다. 아버지는 유조선 기관사라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가시면 여섯 달 이상 얼굴을 못 뵀다. 부모님과 함께 동물원이나 놀이공원 같은 곳을 가족끼리 떠나는 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심지어 동네 친구하고 싸우다 돌에 맞아 이마가 찢어져도 엄마를 찾는 대신 동네 친한 형을 찾아가곤 했다.

  독자로 살아온 나는 혼자 사는 게 어색하지 않고, 외로움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며 살았다. 내가 경험한 외로움만큼은 내 아이에게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자매와 함께 좋은 추억을 많이 갖게 해주고 싶었다. 다행히 네 남매로 자란 아내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여 아이 셋을 낳았다. 내 아이들은 적어도 외롭게 자라는 독자 인생은 벗어났다.

  단풍 빗길을 지나며 나는 홀연히 독자로 다시 돌아갔다. 독자로 자라며 어린 마음에 소심하게 원망했던 어머니와 아버지 인생을 돌아보았다. 같이 있어 달라고 울며 매달리는 나를 교회 권사님께 맡겨두고 출근했던 엄마. “아빠! 금방 올 거지?”라는 물음에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한 채 뱃길에 올랐던 아빠. 두 분의 젊은 시절 모습이 지금 나와 많이 닮았다.

  어머니는 어린 나를 남겨두고 교인 집을 심방할 때 얼마나 내 걱정을 많이 하셨을까. 아버지는 아내와 아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여섯 달, 많게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외로움과 싸워가며 얼마나 나와 함께 보낼 시간을 갈망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마에 돌에 찍힌 상처를 봤을 때, 아들 편이 되어주지 못한 어머니와 아버지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문득, 내 마음을 적신 단풍비가 그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속으로 삼킨 눈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내 인생의 어떤 선생님이 “가을이 되면 남자는 존재하는 의미를 찾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단풍비를 맞으며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찾았다. 눈물을 삼키며 당신의 젊음을 거름 삼아 나를 꽃피우신 내 부모님이 내 존재의 뿌리였다. 우리 가족이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든든한 배경이 되고 싶다.

  단풍비가 여전히 눈부시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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