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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교대근무

by 마빡목사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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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근무

 아버지는 예수님 말씀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아버지는 저녁 아홉 시가 되면 거실에 하나밖에 없는 TV 앞 소파에 앉으셨다. 분명 세상 소식에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앉으셨는데,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소파에 푹 퍼지시더니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코를 드르렁 고신다. 

 늘 불만이었다. 다른 채널에서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예능이 한창 방영할 때인데 TV를 독차지하고선 주무시다니. ‘드르렁드르렁 퓨~’ 코를 고실 때면 이때다 싶어서 채널을 돌린다. 기척 없이 채널을 돌려도 아버지는 놀랍게 깨신다. 꿈속에서 도대체 뭘 드셨는지 쩝쩝 입맛을 다시며 말씀하신다. 

 “야~ 뉴스 보고 있잖아.”

 아니, 분명 방금 전까지 코 골며 주무시던 분인데. 뉴스를 보고 계신단다. 꿈과 현실에 경계가 없는 진정한 초인이시다. 속으로 ‘그렇게도 뉴스가 좋으신가' 하면서 불만을 속으로 삭인다.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예전에는 온 가족이 거실에 놓인 TV 앞에 모이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곳에 있어도 다 자기 손에 있는 스마트폰을 본다. 그러면서 아홉 시마다 바쁘던 공자님도 일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 자정이다. 아내가 거실에서 TV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길래 안방에서 스마트폰으로 8시 뉴스데스크를 보다 잠이 들어버렸다. 깨보니 아홉 시 반.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씻는 소란스러움에 깼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어가고 나는 깨서 저녁에 할 일을 하러 나왔다. 교대 근무처럼. 요즘 부쩍 교대근무가 잦아진다.  

 첫째 아이가 열한 살. 딱 그때였다. 뉴스를 켠 채로 TV를 독차지하던 아버지 몰래 뒤통수로 씨부렁 대던 나이. 그땐 정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내가 똑같이 뉴스를 켜두고 잔다. TV에서 스마트폰, 거실 소파에서 안방 침대로 바뀌었을 뿐, 그나마 다행인 건 애들이 보고 싶은 걸 못 보게 TV를 독점하는 아빠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저녁 아홉 시마다 아버지가 공자님을 뵈러 갔었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일을 많이 하던 날이나 조금 여유롭던 날이나 상관없이 저녁 여덟 시가 되면 졸음이 쏟아진다. 긴장이 풀린 탓인가 보다. 자기 삶 하나 챙기기도 벅찬 사람이 다섯 식구 챙긴다고 주제넘게 이런저런 걱정하며 하루를 보낸다. 걱정거리가 곧 긴장의 끈을 조인다. 자기 살길도 분간하기 힘든 데 또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궁금하다. 그래서 뉴스를 보는 것인데, 뉴스 앵커 목소리가 수면제인지 똑 곯아떨어지고 만다. 아버지를 닮아서인 건지 그럴 나이가 되서인지 헷갈린다. 

 어설픈 잠에서 깨니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 오히려 잠이 멀리 도망가버렸다. 덕분에 유독 잠이 많으셨던 아버지 생각을 한다. 시도 때도 없이 틈만 나면 주무시는 아버지. 틈 날 때마다 잠을 자야 피로가 풀리셨던 걸까. 하루일과 격무에 시달리다 긴장을 풀면 순식간에 잠이 쏟아지는 법. 그러면서도 충분한 단잠이 되지 못하셨나 보다. 늘 긴장과 걱정에 쫓겨서 사시느라.

 가난한 시골집 장남으로 자라서 집안 살림살이 걱정, 유조선 기관사가 되어 먼바다로 떠나는 마도로스 삶을 살다 보니 아내와 자식 걱정, 목회자 아내를 만나 교회 걱정,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목사가 돼서 아들 먹고살 일 걱정, 형편도 넉넉지 않은 아들 녀석이 애를 셋이나 낳아서 손자녀 걱정. 온갖 걱정을 덕지덕지 달고 사는 삶이 습관이 돼서 늘 긴장상태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긴장이 풀리면 잠이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은퇴 이후도 여전하시다. 아내가 목사고 아들이 목사인데, 주일 예배 때 아내나 아들이 앞에서 설교하는데도 고개가 앞으로 뒤로 꾸벅꾸벅 잘 주무신다. 어머니는 처음엔 교인들 보기 민망하다며 아버지를 몇 번이나 채근하셨다. 아버지는 늘 한 마디 변명도 하지 못한 채 미안해하신다. 하지만 당신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잠은 불쑥 찾아온다. 긴장이 풀린 아버지에게.

 “아, 나는 왜 이렇게 잠이 올까”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나는 조는 아버지를 깨우는 걸 포기했다. 긴장의 끈이 풀리는 순간, 찾아오는 잠을 거절하지 않는 것이 꿀잠이다. 설교를 들을 때 긴장이 풀린다는 건, 그만큼 설교 듣는 시간이 편안하다는 뜻 아닌가! 공자가 아니라 주님 만나러 와서 주무시는 게 천만다행이다. 세상 온갖 걱정을 달고 사시는 우리 아버지. 설교 시간에 긴장 풀고, 걱정근심 내려놓고, 잠시라도 단잠을 잔다면 나에게는 그게 복음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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