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읽고
요즘 한국 사회에서 기쁨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온통 눈살 찌푸리는 소식으로 가득하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란 말을 참 많이 하고 다녔는데, 이제 사람들은 ‘눈 떠보니 다시 후진국’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이 몇 달 만에 이처럼 만신창이가 된 원인을 반추해 보니… 그때부터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날.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표 적폐 중 하나인 사법적폐를 개혁하려고 칼을 빼 들었다. 독재와 산업 시대의 영광에 중독된 지난 보수정권은 사법부와 손을 잡고 얼마나 많이 인권을 유린했던가. 인권변호사 출신이면서 또, 노무현 대통령을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운명 같은 개혁 과제였으리라.
당시 나는 조국 교수가 사법개혁을 지휘할 수장으로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적의 인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법무부 장관 인사를 극렬히 반대했다(제가 뭔데). 그리고 반대를 넘어 검찰총장의 지위와 한동훈 같은 특수부 출신 곁꾼 검사들을 데리고, 수구 보수 언론과 짬짜미 해서 조국을 영혼까지 탈탈 털었다(심지어 딸 조민 씨 일기장까지…). ‘눈 떠보니 선진국’이 검사 몇 놈의 횡포에, 순식간에 나락으로 추락할 줄 누가 알았겠나.
시간이 흘러 지금은 검사공화국이 된 대한민국을 살고 있다.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소위 조국 사태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조국 사태’라는 용어조차 입에 담고 싶지 않다. 실상은 조국 사태가 아니라 ‘개검의 난’이었다. 단지 내가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교수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팬심을 거둬내고 객관적으로 바라봐도 조국 교수는 사법 개혁의 소임을 책임 있게 완수할 만한 공직자였다. 비 검사 출신이면서 전관예우와 같은 사법부 그늘의 영향권 안에 속하지 않은 법학 전문가가 사법개혁의 균형추와 칼을 잡는 게 합리적이지 않은가. 오히려 ‘사태’라고 부를 만한 것은 검찰총장이 대통령 인사에 반기를 들며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날 그의 집을 압수 수색한 정치 검사들의 횡포가 아닌가.
결국 정권을 내주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신물이 올라온다. 비참하고 슬펐다. 세상이 참 어두침침해 보였다. 많이 낙담하고 사기가 바닥을 쳤는데, 조국 교수는 오히려 덤덤해 보였다. 누구보다 가장 힘든 사람일 텐데. 그는 볼멘소리 하나 않고, 묵묵하게 버텨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가불 선진국』, 『조국의 법고전 산책』이라는 책을 냈다.
나는 그에게 빚진 마음이 들어 『가불 선진국』은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고,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지난겨울 방학 끝물에 다 읽었다. 두 책 모두 참 좋은 책이었다. 특히,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한일장신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서와 토론’이라는 교양 교과목에서 교재로 쓰고 싶을 만큼 쉽게 읽히고, 함께 토론할 주제가 풍성하게 담겨 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건, 이 책의 저자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라는 것. 이상을 꿈꾸며 현실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용기. 자신이 학문하여 그린 정의로운 세상이 반드시 오리라는 확신을 가지며 굳건하게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굳은 심지. 그 삶이 결국 좋은 글로 나온 것이다. 그 견고함을 배우고 싶다. 무자비하게 불어오는 거센 풍랑에도, 악취 풍기며 들이대는 추악한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지식인이 되고 싶다.
동토를 뚫고 봄 싹이 올라오듯, 봄은 찬 바람의 저항을 뚫고 반드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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