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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27

문병란 시인이 쓴 '희망가' 살다 보면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하루살이가 이틀을 모르듯, 사람은 늘 다가온 시련을 영원처럼 느낄 때가 많다. 시간의 지평선, 어디쯤인지 알지 못하므로. 오늘 만난 시련이 너무 힘들어서 버거울 때, 감내할 고통의 늪이 질척거릴 때, 나는 문병란 시인이 쓴 '희망가'를 떠올린다. 오늘 어디선가 눈물을 삼킬 그대와 함께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희망가 문병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 2023. 9. 23.
존버 존버 감정의 늪에 빠졌다. 밀려 들어오는 외부 감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무엇인가 감정을 톡 건드리면 봇물터지듯 화로 가득찬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화가 담긴 말과 글은 듣는 이나 읽는 이에게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다. 차라리 입을 닫자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사람 만나는 게 꺼려지고, 말수도 줄고, 글쓰기도 그친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속에서 엉켜 썩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어둡고 축축한 터널 속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더듬어 본다. 여전히 출구는 찾지 못한채 시간은 눈치없이 등을 떠민다. 앞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 보지만 다람쥐 챗바퀴 돌듯 제자리를 걷는 기분이다. 좌우를 둘러봐도, 손을 이리저리 휘저어봐도 출구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2023. 9. 22.
미역국 주인 미역국 주인 39번째 생일을 앞둔 저녁이었다. '어머니'란 하얀 글씨가 검은 화면에 둥둥 뜬 채로 손전화기가 부르르 떨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반 걸리는 거리, 경상남도 함양군에 사시는 울엄니. 저녁 식사 시간이 되니 내일 생일을 맞이할 아들이 생각나 전화를 하신 게다. "아들, 내일 생일이네?" "네^^" (아이고 엄니, 몰라서 물으시는 것도 아니면서ㅎㅎ) "아롱이랑 특별한 약속 있어?" "아니, 뭐 그냥 아이들하고 생일 파티 해야지" (아이고 엄니, 생일이 별거라고. 아롱이랑은 하루하루가 특별해요. 엄니가 저랑 특별한 약속을 잡고 싶으시구먼) "미역국은 먹으려나... 가보지도 못하고 미안하네" "아이~ 미역국은 엄니가 드셔야죠. 괜찮아요~" "그래도, 선물로 십만 원 보낼게~" "아이 무슨, .. 2023. 9. 20.
깊은 밤 노래 깊은 밤 노래 밤이 깊었는데, 풀벌레는 지치는 법이 없다. 아파트 창문 거의 눈 감았는데도 풀벌레가 부르는 사랑노래는 쉼표 없이 무한 반복이다. 누굴 찾는 게냐. 사랑하는 연인을 찾는 건지, 자기네들끼리 명창을 뽑겠다고 노래자랑을 하는 건지 미련한 자로서 알 길이 없다. 네가 사랑을 아냐. 풀벌레 사랑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무심한 자는 눈을 감고 가만히 풀벌레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찌르르 찌르르. 쭈륵쭈륵쭈륵. 이르리 이르리. 가만 듣고 보니 그리움에 사무친 슬픈 가사가 가슴에 구멍을 판다. 그래. 이 밤이 지나기 전 그리운 님을 만나야 할 텐데. 곧 사랑에 메마른 겨울이 오기 전에 말이야. 밤이면 밤마다 노래하는 풀벌레처럼 누군가를 위해 기약 없는 열심을 내본 적 있던가. 끝끝내 그리운 님을 만나.. 2023.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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