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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창고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by 마빡목사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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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어느 떠돌이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반가운 고향 친구를 만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허풍을 더하는 법. 예전에 로도스란 섬에서 멀리뛰기 시합을 했는데, 어마어마한 거리를 뛰었다고 자랑을 한다. 말없이 듣던 친구가 한마디 쏘아붙인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 보아라!" - 이솝 우화 가운데

 로도스는 그리스의 남동쪽, 튀르키예의 남서쪽에 있는 큰 섬이다. 그리스 본토와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가 로도스에서 무엇을 했든, 지금 여기에서 실력을 증명할 수 없다면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는 데리우스 에라스뮈스가 1500년에 펴낸 『격언집』에 "Hic Rhodus, hic saltus.", 운율이 생동하는 라틴어 문장으로 실었다. 에라스뮈스는 현실에서 증명하고 구현할 수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능력이라 해도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이 문장을 인용했다. 책이 유명세를 타면서 이 문장도 덩달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도 1820년에 펴낸 『법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이 문장을 조금 고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헤겔은 언어유희를 부렸다. 로도스(Rhodus)를 로돈(Rhodon)으로 고쳤다. 로돈은 고대 그리스어로 '장미'를 뜻한다. 살투스(saltus)는 살타(salta)로 고쳤다. 살타는 '춤추어라'는 뜻이다. 즉, "Hic Rhodon, hic salta.",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헤겔은 이 문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성을 현재라는 십자가 위에 놓인 장미로 인식하는 일, 그리고 거기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일, 이러한 이성적인 통찰이야말로 철학이 무리에게 안겨 주는 현실과 화해하는 길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는 '지금'과 '여기'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전에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냈다 하더라도 지금 여기에서 다시 증명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또, 미래에 막연하게 무엇인가 이루리라고 기대하는 일 역시 의미가 없다. 지금 여기에서 해내는 것이 의미가 있다.

 헤겔은 지금 여기에서 실현하는 일이 그 자체로 즐거워야 한다는 뜻을 "히크 로돈, 히크 살타."에 담았다. 현실을 냉철히 직시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날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해내는 것! 이것이 이솝과 에라스뮈스, 헤겔이 권하는 삶에 임하는 태도이다.

"Hic Rhodos, hic saltus!"

[자료 출처] 철학이 내 손을 잡을 때, 김수영, 우리학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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