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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창고

콘케도 눌리

by 마빡목사 202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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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케도 눌리

 '콘케도 눌리(Concedo nulli)'는 테르미누스의 신조다. 테르미누스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경계선'의 신이다. 농경이 중심이었던 로마에서 내 땅과 네 땅을 구별 짓는 경계선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경계선에 신성까지 부여할 정도였으니. 경계선은 수많은 전쟁을 치른 로마에게 더욱 중요했다. 경계선의 신, 테르미누스는 확고한 경계를 뜻하는 커다란 돌로 상징되었다. 

 '확고한 경계선'이란 의미를 담은 로마 신화 속 이야기가 하나 있다. 먼 옛날 로마의 왕이 유피테르(제우스 급의 최고신) 신전을 짓는다. 유피테르는 신전에 먼저 자리를 잡은 여러 신에게 비키라고 했는데, 오직 테르미누스만 버티고 서서 유피테르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다. 경계선의 신에 어울리는 담대한 행동이다. 

 콘케도(concedo)는 '동의하다, 양보하다, 자리를 내어 준다'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눌리(nulli)는 영어 nobody와 같은 말이다. 직역하면 '나는 아무에게도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에게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콘케도 눌리는 르네상스 시대 철학자 에라스뮈스의 신조이기도 했다. 에라스뮈스는 성품이 강직한 고전학자였다. 스물다섯 살에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아 정식 신학자나 사제로 엘리트 코스를 밟을 만도 했다. 그러나 그는 수도원을 벗어나 학문의 중심지였던 파리,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등을 여행하면서 세계적인 학자와 교류했다. 

 에라스뮈스는 종교개혁 과도기의 한 복판에 살았다. 당시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비판해서 기득권 권력에게 미움을 받았다. 루터가 종교 개혁의 깃발을 든 뒤, 에라스뮈스에게 합류를 요청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루터의 비판적 태도가 자신의 소신과 맞지 않아서였다. 종교개혁의 대세흐름을 탈 기회였으나 에라스뮈스는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았다. 

 에라스뮈스가 쓴 『우신예찬』에 나타났듯, 끝까지 그는 구교와 신교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시대와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았다. 권력과 거리를 둔 삶이어서 평생 궁핍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도 자기 신념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 처해도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킬 수 있는 용기. '콘케도 눌리'가 상징하는 삶의 태도이다.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을 용기! 콘케도 눌리!

[자료 출처] 철학이 내 손을 잡을 때, 김수영, 우리학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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